본문영역

Feature

前 프로 게이머 홍진호, ‘만년 2등’부터 ‘관심사’까지 즉문즉답!

조회14,901 등록일2013.10.04 2013.10.04 00:00:00.000
4
프로게이머 시절 '폭풍저그'라는 별명처럼 전략을 밀고 나가는 무서운 추진력과 다양한 상황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위기 대처능력으로 수 많은 팬을 거느린 前 최고의 프로 게이머 홍진호. 훈훈한 외모부터 비상한 머리까지 완벽한 그에게 2% 부족했던 것은 ‘1등 타이틀’이었다. 1999년 말 19살의 나이로 Game-I 입단과 동시에 2011년 6월 25일 은퇴식을 하기까지, 1등을 목전에 두고 번번히 승리를 놓치던 그의 이름 앞에는 ‘만년 2등’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역대 올스타전 최다 득표 2위, 역대 KeSPA 랭킹 최장기간 2위, 은퇴식 당일 2차전 2시 22분에 마지막 경기가 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  


그런 그가 본인의 프로필에 1등 타이틀을 추가했다. tvN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이하 더 지니어스) 초대 우승자가 바로 그것이다. 13명의 지니어스를 두고, 총 12회전을 통해 최종 1인의 승자를 뽑는 두뇌 서바이벌 게임인 ‘더 지니어스’는 긴장감 넘치는 플레이로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홍진호는 이 프로그램에서 11회전 5대 5게임에서 승점 7를 획득해 우승했고, 12회전 결승전에서는 김경란과 맞붙어 3전 2선승 게임에서 1게임(인디언 포커), 2게임(결!합!)에서 승리하며 2:0으로 최종 우승했다. 2013년, 드디어! 홍진호는 자신의 징크스를 깨고 1등의 자리에 올랐다. 

“난 본래 승부욕은 타고났다. 일상에서도 내가 소중한 것들을 걸고 승부를 봐야 하는 순간들에 직면하지 않나. 그런 시점이 오면 결단력이 생긴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풀어나가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간단하게 살펴보는 ‘홍진호’ 프로필

1999년 말 19살의 나이로 Game-I 입단, 2004년 4월 KT 롤스터 이적 / 2008년 11월 공군입대 / 2010년 12월 KT 롤스터 복귀/ 2011년 6월 25일 은퇴식/ 2011년 2월부터 2013년 2월까지 제닉스 스톰 감독 생활 / 2013년 7월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 초대 우승자. 


Q&A 홍진호 즉문즉답!


Q 내가 ‘더 지니어스’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연습 때문이다. ‘더 지니어스’에서 나올 수 있는 전략들을 연구하고 복습했다. 심지어 내가 연습했던 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준비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결승에서는 오히려 김경란씨가 준비를 좀 안 해온 것 같았다. 

Q 나는 궁지에 몰리면 OOOOO한다. 본능적으로 변한다. 말로 설명할 순 없다. 프로게이머 시절부터 유리한 상황보단 불리한 상황에서 실력이 발휘된다. 불리한 상황이면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는 집중력이 나오더라. 남들보다는 좀 다른, 특별한 방법으로 게임을 풀어나갔던 것 같다. 

Q 난 이것만큼은 타고났다 난 본래 승부욕은 타고났다. 게이머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일상에서도 내가 소중한 것들을 걸고 승부를 봐야 하는 순간들에 직면하지 않나. 그런 시점이 오면 결단력이 생긴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풀어나가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Q 내 좌우명은 OOOOO이다. ‘후회없이 살자’다. 나는 어린 나이부터 혼자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서울에 홀로 떨어져 살면서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남의 의견이 아닌 내 선택에 의한 삶을 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랬으면 어땠을까?’라는 후회도 있다. 과거에 연연하기 싫어서 이런 좌우명을 만들게 됐다. 매 순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자.

Q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은 OOO이다. 너무 많다. 은퇴를 하고 나서도 꾸준히 연락하는 팬들이 있다. 오랜 팬들은 나이를 먹고, 결혼도 했다. 다음 달에도 친한 팬 한 명이 결혼을 해서 내가 결혼식 사회를 봐주기로 했다. 

Q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OOO이다. 리그오브레전드(LOL) 게임이다. (웃음) LOL은 개인전이 아니라 팀플레이다.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도 쉽게 되어있고, 의견을 조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근데 문제는 내가 조금만 실수를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비난이 날라오더라. 요즘 그것에 빠져서 맨날 어린 친구들과 싸우고 있다. (웃음) 

Q 스타 ‘홍진호’가 말하는 LOL의 가장 큰 매력은? 나는 스타를 오래했다. 스타는 종족이 한정적인데 LOL은 캐릭터가 다양하다. 또한, 팀플레이라서 잘하는 사람들의 개입으로 게임의 승패가 뒤바뀐다. 머리도 써야 하고 몰입도가 큰 게임인 것 같다.

Q 팀플레이에 약하지 않나 약하다. 난 개인전에 강하다. 혼자만의 승부에 최적화된 사람이라고 하면 좋겠다. 내 생각들을 다른 사람과 교류한다는 게 어렵다. 머릿속에는 전략이 세워져 있는데 누구에게 설명하고 얘기해 주려고 하면 꼬이는 거다.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더 지니어스’를 보니 머리가 비상하더라. 공부도 잘했나? 
학창시절에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노는 것도 좋아하고, 나름 공부도 잘했다. (웃음) 어머니께 “형은 인문계를 진학하고, 나는 공고에 가겠다”고 말씀 드렸다. 공업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장학금 받으면서 학교에 다녔다. 

  홍진호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언제였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대전 지역에 처음으로 게임방이 생겼다. 스타를 처음 접했을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처음부터 잘하진 않았지만 매력적이었다. 그 후, 스타 붐이 일어나면서 전국랭킹 순위 사이트가 생겼다. 기록이 좋으면 대전지역은 뿐만 아니라 전국 순위가 매겨졌다. 상위권에 있으면 지역 대표로 뽑혀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여기서 승부욕이 발동했다. 내가 대전지역에서 2등이었다. (여기서 또 2등? 하하) 결국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했는데, 어린 촌놈이 63빌딩에서 열리는 대회의 거대한 규모 앞에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 당시 대회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그 뒤로 ‘스타를 통해 뭔가 이뤄내 보고 싶다’라는 결심을 하게 됐다. 

  홍진호 하면 ‘2’라는 숫자를 빼놓을 수 없다. 역대 올스타전 최다 득표 2위, 2남 중 둘째, 역대 KeSPA 랭킹 최장기간 2위, 은퇴식 당일 2차전 2시 22분에 마지막 경기를 했다. 실제로도 ‘2등 징크스’가 있나? 
주위에서 너무 ‘2등, 2등’ 하니까 나도 모르게 징크스가 생기더라. 나는 절대 긴장하는 타입이 아닌데 ‘2’라는 숫자와 엮이면서 게임도 안 풀리고. 결승만 가면 너무 떨렸다. (웃음) 나도 심적으로 많이 약해진 모양이다. 그 당시에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편해졌다. 모든 일이 과정이 중요하지, 결과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2011년 프로게이머 은퇴식 후, 2012년 2월 ‘롤챔스’ 등 장안의 인기 게임인 LOL팀인 제닉스 스톰의 감독으로 1년 간 활약했다. 감독의 포지션을 맡아본 소감이 궁금하다. 
일단,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더라. 나는 선수 출신이다 보니, 선수 입장에서 보는 감독의 포지션이 있었다. 막상 내가 감독을 해보니 생각 외로 어려운 부분이 많더라. 선수들 생각은 알겠는데 모두 들어줄 수 없었다. 특히, 사회 경험이 적고 나이가 어린 친구들을 상황적인 부분에서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친구들이 많다.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체력, 인성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마음가짐이다. 게이머 생활을 하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수 많은 시간들이 무의미하게 흘러간다.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의 나이가 10대 초중반부터 20대 초반까지다. 인생그래프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아닌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하는 소중한 시간들을 순간 게임이 좋아서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큰 마음가짐 없이 그냥 와서 한번 해보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말 죽어라 할 것’아니라면 시작도 하지 말아라. 이것으로 성공 못하면 죽겠다는 각오로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소중한 10대. 20대의 시간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본인은 언제 ‘게임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했나? 
나는 상황 자체가 열악했다. 내가 프로게이머를 할 당시에는 스폰서라는 개념이 없었다. 돈이 없어서 밥도 굶었고, 하루에 한 끼 먹으면서 생활했다. 우승해야 밥을 사먹을 수 있었다. (웃음)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 혼자 자식 둘을 키우고 있었다. 형은 군대에 가고 나는 ‘게임이 하고 싶다’고 홀로 서울로 상경한 상황이었다. 근데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집에 내려가긴 부끄러운 거다. 가족을 생각하면서 동기부여를 얻은 것 같다. 그런 마음가짐, 절실함 덕분에 여기까지 올라 올 수 있었다. 


  홍진호가 바라보는 E스포츠가 궁금하다. E스포츠가 살아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E스포츠 시장은 많이 활성화되고 있다. 지금은 프로게이머들 환경도 많이 좋아졌다. 개인 컴퓨터도 있고, 아주머니가 숙소에 와서 밥도 해준다. 그래서 인지, 요즘 선수들은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경우가 많더라. 요즘은 예전과 달라서 조금만 잘해도 쉽게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인기를 얻은 만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어른들이 보기에도 ‘프로 게이머들 대단하네’라고 인정받을 수 있다. E스포츠가 살아나려면 선수들이 더 열심히 노력했으면 한다. 

  ‘더 지니어스’ 초대 우승자로서 11월에 방영될 ‘더 지니어스2’ 관람 포인트를 짚어달라. 
출연진들이 어떤 생각으로 게임에 임하는지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도 녹화 당시에는 ‘저 사람 왜 저러지?’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많았다. 나중에 방송을 통해서 보니 ‘아! 저런 생각이었구나’ 재미있더라.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생각을 추론하면서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나도 다음 스텝을 밟으면서 어디에 올인하면 좋을지 고심 중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난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하나에 꽂히면 다른 건 안 본다. 프로 게이머 시절에도 그랬고, 감독 시절에도 그랬다. ‘더 지니어스’에 출연할 땐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을 프로그램 생각만 했다. 다음엔 어디에 승부를 걸면 좋을지 생각해 봐야지. 

한편, 홍진호 선수가 초대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은 예능계 사기와 배신의 달인 노홍철을 필두로 11월부터 ‘더 지니어스 시즌2’가 방영될 예정이다. 홍진호는 인터넷미디어 곰TV애소 홍진호와 함께하는 예능 프로그램 '한판 붙자' 방송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ㅣ패션웹진 스냅 박지애 사진ㅣ이관형




<추천기사>

Copyright by iStyle24
· SNS 연동 관리
버튼을 클릭하면 연동 설정
및 해제 하실 수 있습니다.

나도한마디

페이스북 연동 트위터 연동 SNS관리
  • jsmksm62014-03-06 오후 7:28:18

    잘봤습니다.

  • jsmksm62014-02-28 오후 7:43:57

    잘봤습니다.

  • manduklee2014-02-05 오전 10:46:44

    잘봤습니다.

  • jsmksm62014-02-02 오전 8:00:54

    잘봤습니다


  • jsmksm62014-01-06 오전 8:14:35

    잘보고가요

  • jisujin2014-01-05 오전 10:30:40

    잘봤습니다.

  • jsmksm62013-12-19 오후 1:03:27

    잘보고갑니다

  • jsmksm62013-12-09 오전 7:52:56

    잘보고갑니다

  • jhj23372013-12-08 오전 12:49:29

    잘 보구 갑니다^^

  • jsmksm62013-12-05 오후 1:12:34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