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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그림 그리는 모델 곽지수

조회2,546 등록일2018.08.03 2018.08.03 00: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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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었다. 어렵사리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간의 마음고생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굳게 믿던 사람이 겉모습으로만 평가를 받아야 했을 때의 괴리. 폭 넓게가 아닌 속 깊게 관계를 맺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음에 해야 했던 갈등. 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어느 순간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으로 변해있었을 때의 절망. 그 모든 건 열심히 살아왔던 20대 초반의 삶에서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을 거다. 더군다나 그게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의 대가라면 더더욱 힘든 일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은 결코 쓸데없는 게 아닐 거다. 앞으로의 삶에서 인간 곽지수와 모델 곽지수가 균형을 잃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해줄 테니까 말이다.


<프로필>

소속사 몰프
경력 2017 2018 S/S 헤라서울패션위크 VLEEDA 모델
SNS instagram.com/jisoo_soo

<제약도 한계도 없는 나를 표현하기에 딱 알맞은 무대>



 지수씨를 이미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앞으로 알아 가실 분들을 위해 직접 최근의 활동을 포함해서 소개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지난해에는 블리다라는 브랜드를 통해서 런웨이에서 인사를 드렸고 뷰티와 영상 등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현재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고 있는 상태고 두 가지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게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고요. 

 미대생이라고 알고 있는데 갑자기 모델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원래는 미대진학을 꿈꾸는 평범한 예고학생이었는데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모델의 꿈을 키우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그리는 건 피사체를 제가 만들어 내는 건데 모델은 그 피사체가 되어보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상반되지만 또 다른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꿈꾸던 모델 데뷔 후의 과정은 순탄한 편이었나요?

시작은 프리랜서로 했는데 새로운 걸 배우고 혼자 뭔가를 해내는 과정에서 보람도 컸고 뿌듯하기도 했어요. 그러던 중에 제가 해온 작업을 좋게 봐주시고 함께 일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아서 좀 더 본격적으로 체계적으로 모델일 을 하게 되었고요. 그런 면에서 보면 겉으로 보이는 큰 굴곡은 없었던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잖아요. 아마 절대 못 잊을 순간일 것 같은데 첫 작업을 아직도 기억하나요?

첫 룩북 촬영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데뷔하고 처음 하는 작업이었어요. 그런데 너무 긴장을 했는지 현장에서 코피가 엄청 나더라고요. 당황스러웠죠. 다행히 그 후에는 그런 일은 없었어요.  





 이 일을 선택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인가요?

다른 모습의 저를 발견하는 게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다양한 콘셉트를 통해서 그 순간만큼은 특별하고 멋진 사람이 되어 볼 수 있잖아요. 그건 모델이 아니고서는 하기 힘든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받아들고 저조차도 깜짝 놀라게 될 때 굉장히 이 일을 선택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델이 소화하는 분야가 참 많아요. 그래도 그 중에서 세 가지만 꼽자면 패션쇼와 화보촬영 그리고 영상 정도가 될 것 같은데 그 중에서 어떤 게 지수씨랑 잘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그 중에서는 화보촬영과 영상 쪽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뭔가 해보고 싶은 걸 맘껏 해보라고 합법적으로 깔아준 판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거기서는 누가 이상하게 볼까봐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더라고요. 그동안 꾹 참고 안에만 담아둔 것들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어 저를 표현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방식이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특히나 영상은 대사도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 사람을 가장 정확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런웨이도 짧은 시간에 에너지를 응축시켜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력적인데 아쉽게도 저에게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모델들에 비해서 키가 작은 편이라 장점을 살려서 어필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미술을 전공하는 모델이라는 장점을 살려 하게 된 작업도 있다고 들었어요. 

얼마 전에 앞치마 브랜드의 화보를 찍게 되었는데 제가 미술을 전공하는 걸 아시고 바닷가에서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는 콘셉트를 주셨어요. 저의 최대 관심사 두 가지를 같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벅찼고요.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모델이 된 것에 감사했던 것 같아요. 촬영장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색다른 느낌의 컷이 나온 것 같아 결과물에도 만족하고요.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일적으로 말고 성향 적으로도 모델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성향 적으로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겉모습으로만 판단되거나 일회성으로 소모되는 게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기회를 가지기가 어렵더라고요. 아무래도 짧은 시간에 결과물을 내야하다 보니까 굉장히 피상적인 대화만 나누게 되잖아요. 누구도 진정한 제 모습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저 역시도 상대방에게서 그런 모습을 바랄 수 없다는 게 아쉽더라고요. 


<학교와 패션계, 냉정과 열정사이>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나요? 사실 예고에 진학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대학에 가서도 그림을 그리니 처음부터 굉장히 진지하게 접근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아기 때부터 워낙 만들고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미술을 하게 되었고요. 다행히 좋아하는 만큼 결과도 인정을 받은 편이라서 진학을 고려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언제 뭐를 해야겠다고 딱 정해놓지 않아도 잘 흘러왔고 자존감도 높았고요. 그런데 그게 딱 무너진 시점이 모델이 되고 나서였어요. 겉으로는 평탄하게 잘 흘러갔는데 속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학생의 신분으로 일을 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한 가지만 하기도 힘들잖아요. 아무래도 균형을 잘 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그런 고민을 하긴 했어요.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하나 아니면 모델 일을 계속 해야 하나 갈등을 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꼭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을 번갈아 가면서 하다 보니 서로의 단점을 상쇄하고 더 오래 즐겁게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하나에만 몰두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데 이렇게 에너지를 나눠서 여러 가지를 해도 되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조합이 너무 좋아서 그냥 아직까지는 병행하고 싶어요. 

 학교와 패션계는 아주 다른 무대이기도 하고 아주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잖아요. 그 점에서 보자면 냉탕과 열탕을 오가는 것처럼 큰 간극을 느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사실 요즘 친구들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거든요. 오랜만에 일을 하다가 학교에 돌아가니까 적응이 잘 안되더라고요. 그러다가 학교생활에 좀 익숙해질 때쯤에 일을 다시 가면 내가 도대체 어디에 속해있는 사람이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박함과 화려함이라는 극단을 넘나드는 게 사실 쉽지는 않은데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 때 열심히 하면서 즐기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친구 중에 모델이 있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지수씨의 친구들은 어떤가요? 모델이라고 하면 신기해 할 것도 같아요. 

처음에는 많이 놀렸어요. (웃음) 하지만 막상 결과물이 나와서 같이 보거나 공유를 하면 격려를 많이 해주더라고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굉장히 진중하고 어른스러운 성격인 것 같아요. 저와는 정반대인데 (웃음) 그 때문에 힘든 점은 없나요?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예요. (웃음) 원래 남에게 폐 끼치는 걸 너무 싫어하다 보니까 힘들어도 힘들다는 내색을 잘 안 해요. 게다가 부모님이 두 분 다 일을 하시니까 자식이 된 입장에서 걱정 끼치지 말고 알아서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서 일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스트레스도 당연히 혼자서 해결하고 풀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더 슬럼프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걸 알았죠.  

 뉴욕에서 체류를 한 적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요. 

3개월이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다행히 이 시기를 너무 충만하게 잘 보냈던 것 같아요. 우선 도시 자체가 예술이 물씬 묻어나는 곳이잖아요. 거리를 걷기만 해도 영감을 주는 피사체나 구조물들이 많았고요. 영어도 열심히 배우고 그림도 열심히 그릴 수 있어서 너무나도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의 스트레스나 고민도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겼고요. 

 그렇게 달콤한 시간은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현실을 마주했을 때는 어땠어요? 그 전부터 가지고 있는 고민이 좀 해결되었나요?

올해 초에는 사실 패션위크 캐스팅을 다니지 않았어요.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잠시 쉬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지쳐있는 상태에서 의상을 입고 관객들 앞에 선들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제가 잘하는 것에 집중을 하고 좀 더 영리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특히나 저를 좋게 봐주시고 필요로 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싶어요. 

 앞으로 3년 뒤의 지수씨를 그려본다면 어떤 모습일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되어있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막연할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하겠다고 정하기보다는 존경하는 이들의 장점을 쏙쏙 빼먹듯이 배워서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그때쯤이면 누군가가 저를 보고 닮고 싶다거나 배우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런 상태에서 원고를 쓰려니 겁이 났다. 하지만 그녀와 나눴던 이야기들은 꽤 밀도가 높았다. 덕분에 대답을 그대로 옮기면 글이 되었다. 덜어낼 필요도 더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 모델 곽지수는 어쩌면 내게 들려준 답변 그대로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아주 소란스럽지는 않지만 내 딛는 걸음 하나하나마다 무게와 깊이를 잔뜩 실어서 말이다.  

글 l 최하나 사진 l 신화섭(스튜디오 무사)
Copyright by iStyle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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