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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다시 그림, 일러스트레이터 너굴양 인터뷰

조회17,780 등록일2016.10.31 2016.10.31 00: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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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슬럼프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기를 통해 그간 걸어왔던 길을 벗어나 새로운 일을 모색하기도 하고 잠시 쉬었다가 되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쓴 맛을 아는 진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기까지 수많은 길을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일러스트레이터 너굴양도 다르지 않았다. 과연 그녀의 여정은 어땠을까? 우리의 대화가 바로 그 답이 되어줄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전직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어머니께서 맘껏 그리라고 한쪽 벽면에 종이를 붙여주실 정도였거든요. 그러다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을 하다가 결국 두 번째로 좋아하던 걸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어요. 졸업 후에는 마케팅 관련 일을 했는데 이직을 준비하던 와중에 우연히 손그림으로 명함을 만들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래서 시험 삼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렇게 계속 들어오는 일을 맡아서 하다 보니까 몇 년이 훅 지나가 있었어요. (웃음) 정신을 차려보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어있더군요. 



 강의도 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가르치는 건 어쨌든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제 수업을 듣는 분들이 1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해요. 그래서 웬만하면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흥미를 잃지 않게끔 수업을 하려고 해요. 사실 기초가 가장 지루하고 어려울 수 있으니까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고 강조하는 편이예요. 저 역시도 비전공자이다 보니까 그 마음을 더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기억에 남는 수강생도 있었을 것 같아요.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지적장애를 가진 학생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림과 음악은 전혀 다른 분야이기도 하지만 내 속에 있는 뭔가를 표현하는 도구라는 점에서는 같거든요.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기에 그림을 통해서 표현하는 훈련하고 싶다고 해서 제 수업을 들었는데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그리는 것 같더라고요.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던 것 같아요. 



 어쩌면 우문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서 발현이 되는 건데 그림의 경우에는 좀 더 정확하게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생각을 할 때 제일 먼저 그에 맞는 이미지를 떠올리거든요. 그걸 말로 전달하거나 글로 전달하게 되면 온전히 그대로를 보여주기는 힘들어요. 그럴 때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면 받아들이는 사람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겨레 ESC 섹션을 통해 ‘너굴양 그림일기’를 연재하고 계시는데 온라인과 지면의 차이점이 있다면 뭘까요?

지면을 통해서 소개되는 건 맞는데 신문이다 보니까 포털사이트의 뉴스란에서도 볼 수가 있어요. 그런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데 다만 반응 면에서는 온라인 연재가 더 크고 즉각적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 부모님도 그렇고 어르신들은 신문을 통해 그림을 접하는 게 좀 더 편하기도 하고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해주시니까 그 점에 있어서는 더 좋은 것 같기도 해요. 



 표현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떠세요? 좀 더 제약이 있는 편인가요? 

저도 처음에는 지면으로 나가기 때문에 뭔가 제약이 많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더 배려를 해주시고 어떨 때는 이런 방향을 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고 조언을 해주시기도 해서 오히려 결과물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다는 ‘마감의 압박’을 느끼시는 편인가요?

한 달에 한 번이다 보니까 마감의 압박이 심한 건 아니예요. (웃음) 하지만 데드라인이 있기 때문에 그걸 지키려고 하다 보면 어느새 그림이 완성되어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마감이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게을러지지 않게 등을 떠밀어 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나 할까요? 



 너굴양의 그림을 보면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느껴져요. 작업을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지 궁금해요. 

전 과정을 컴퓨터로 하면 좀 더 편하기는 한데 지금까지는 수작업과 컴퓨터 작업을 섞어서 하고 있어요. 손으로 먼저 그리고 라인을 따고 컴퓨터로 채색작업을 해요. 요즘에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은 대부분 태블릿으로 스케치도 하시는데 그게 아직은 손에 잘 안 익어서요. 



 ‘너굴양’ 캐릭터를 보면 왠지 모르게 작가님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웃음) 제대로 보셨어요. 저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맞고요. 절 모르시는 분들도 보시고 한 번에 알아채시더라고요. 



 다양한 일들을 병행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혹시 한 가지에만 전념할 수 없어서 힘든 점 도 있으실까요?

팟캐스트 방송도 하고 있고 번역 같은 부분도 병행하고 있지만 그림에만 전념할 수 없다는 게 나쁘다거나 싫지는 않아요. 오히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또 그 기회를 통해 거꾸로 그림을 의뢰 받는 경우도 있어서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앞으로 5년 뒤에는 어떤 모습이실 것 같으세요?

일단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좀 자리를 잡은 상태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가정을 꾸려서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아무튼 좀 더 커리어적으로 탄탄해져 있으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너굴양의 고민상담소

 그리는 걸 무척 좋아하지만 소질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요즘에는 그림을 그릴 시간에 차라리 다른 걸 배우면 좀 더 빨리 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도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할까요?

원래 뭐든지 처음이 제일 지루하고 더딜 수밖에 없어요. 아마 다른 걸 취미로 배우셔도 똑같은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그렇다면 차라리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조급함을 조금만 버리시고 천천히 꾸준히 그리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그림 그리는 걸 직업으로 삼고 싶은데 주변에서는 현실적인 길을 찾아보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이 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걸까요?

그림으로 먹고 살 수도 있고 그렇지 못 할 수도 있어요. 다만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경쟁력이 있어야 해요. 만약 그게 확신이 서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면 일단 다른 일을 하면서 꾸준히 그려보라고 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오거든요.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선뜻 공개할 용기가 생기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이 신경에 쓰여서요. 혹시 모를 악플이나 비난을 감내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 오픈을 못하겠어요. 

사람의 의견은 다양할 수 있죠. 그렇게 생각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자신의 선택인 것 같아요. 사실 악플을 달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래서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면 일단 계속 그리시다가 용기가 생기면 공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생각보다 더 담담했다. 전업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까지의 일을 그녀는 과장 없이 담백하게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일을 잊지 않았고 우연히 그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었는지를 잊지 않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일상에 휩쓸려가다 보면 생각하지 않고 관성적으로 살게 되기 마련인데 너굴양은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말이다. 그 사소한 차이가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 그녀의 여정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 했다. 좋아하는 걸 잊지 않으면 가장 원하는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라고. 




글 l 최하나 사진 l 이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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