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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하시시박, ‘내 꿈은 사진만으로 잘 사는 것’

조회33,209 등록일2014.01.02 2014.01.02 00: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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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17세 소녀는 책에서 본 타지마할을 직접 보고 싶어서, 히피의 문화를 느끼고 싶어서, 불교의 발원지가 궁금해서 혼자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난생 처음시시’라는 단어를 듣고 그저 누구나 발음하기 쉬운 말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예명을 정했다. 


대마초를 의미하는 ‘하시시(Hasisi)’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의 사진작가 박원지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세상을 예사롭지 않게 필름에 담아내는 능력이 있다. 내가 어제 지나갔던 곳, 내 주위 친구들의 모습과도 닮은 일상이 하시시의 뷰파인더 안에 포착되면 이야기가 되고 그림이 된다, 그래서 그녀의 사진은 옷장 깊숙한 곳에서 꺼낸 오래된 사진 한 장처럼 친근하고 익숙하다.  

이런 남다른 감성의 원천은 그녀의 삶 속에 있다. 고등학교 자퇴, 혼자 떠난 인도 여행, 두 시간 만에 찍어낸 15롤의 필름, 무수한 카메라와 필름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실험적 사진들. 하시시박의 인생을 리플레이해보면 그녀의 감각이 타고난 천재성이 아닌 열정이 낳은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실험적인 작품과는 달리 수줍게 배시시 웃는 소녀 같은 얼굴이 더욱 매력적인 하시시박과 함께 그녀의 인생에 고스란히 묻어있는 열정을 이야기했다. 

  요즘 근황은? 
특별한 건 없다. 현재 아티스트 매거진 ‘엘로퀀스’의 포토 디렉터로서 일을 하고 있으며 간간이 개인적인 사진 작업을 한다.  

  지난 9월부터 약 한 달간 On Style에서 방영된 ‘정준영의 BE STUPID’를 통해 ‘정준영 크루’로 알려졌다. 포토그래퍼 하시시박을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았나?
실제로 그런 경험은 딱 한 번 있었다. 지하철을 탔는데 옆 사람이 나를 힐끔거리면서 휴대폰으로 ‘하시시박’을 검색했다. 창피했다. (웃음) 처음 출연을 결정했을 당시만 해도 프로그램 속에서 내가 이 정도로 비중을 차지하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 몇 명의 어리고 예쁜 포토그래퍼 후보들이 있었는데 준영이가 나를 선택해서 참여하게 됐다고 들었다. 모두 성격이 잘 맞아서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 

  프로그램 안에서 보였던 하시시박의 패션 스타일과 이미지에 많은 팬이 생겼다. 평소 본인의 스타일도 TV 속 모습과 비슷한가?  
처음엔 제작진 측에서 빨간 머리, 비키니 등 펑키하고 강렬한 스타일을 원했다. 지금은 어릴 때와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는데 예전 모습을 생각한 것 같다. 조금씩 맞춰나가며 원래의 내 모습과 비슷한 스타일을 보여줬다.
  아무래도 작품 색이 독특하다보니 그런 이미지가 작가에게 직접 투영되는 것 같다. 하시시박의 작품은 아날로그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이 강하다. 의도한 연출인지?
아날로그적인 부분은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 결과물이다. 요즘엔 디지털과 필름 카메라를 5대 5 정도의 비율로 쓴다. 완벽하게 스타일링이나 상황 자체를 100% 연출하는 셋-업 포토그래피는 싫어하지만 이야기를 연출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세세하게 챙기려고 한다.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는가?
사진은 아이디어 싸움이니까 평소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수시로 노트를 한다. 직접적으로 이미지를 보는 것 보다는 영화나 소설, 음악을 통해 연상을 즐겨 하는 편이다.


  대마초를 의미하는 ‘하시시’라는 예명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있나?
하시시라는 말은 17살 때 자퇴를 한 뒤 혼자 떠난 인도 여행에서 알게 됐다. 어떤 의도가 있었다기 보다는 영어나 일본어로 쓰기에도 좋고 글로벌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자퇴를 하고 혼자 인도 여행을 간다고 하면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을 것 같은데?
어렸지만 학교라는 체제 안에 불만이 많았다. 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고 학교와는 별개로 꿈을 이룰 자신이 있었다. 자퇴를 결심하고 A4용지 15장 분량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부모님을 설득했다. 인도는 중학교 때 세계사 책에서 타지마할 사진을 본 이후로 줄곧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최근 부모님께 다시 한번 여쭤봤더니 당시 주변에서 만류가 심한 가운데서도 나를 믿고 보내주셨다고 한다. 아마 그 때 인도에 못 갔으면 하시시란 이름도 없었을 거다. 

  보통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면 관련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삶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 결정을 하면서 불안감은 없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열정적이었다. 자퇴 후 2001년 수능을 봤는데 부산에서 국제영화제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너무 가고 싶어서 수능 전날까지 참고서 대신 영화제 팜플렛에 형광펜을 칠하면서 영화 볼 생각만 했다. 그렇게 수능이 끝나자 마자 부산으로 내려가 하루에 4편씩 영화를 봤다. 그 때는 영화밖에 몰랐고 누구나 다 그런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와 사진을 좋아하는 아이였나?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느 일요일 오전 11시에 ‘펄프픽션’이라는 영화를 보고 안방에 들어가서 부모님께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 후로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단 한 번도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을 바꾼 적이 없었다. 사진은 아마추어 포토그래퍼이신 아버지 덕분에 항상 익숙했다.

  그런데 결국 영화감독 대신 사진작가가 됐다.
성격이 급해서 호흡이 빠른 작업을 좋아한다. 장편 영화는 1~2년 작업을 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그 많은 스태프들을 리드할 보스 기질도 없었고. 당시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여러 사람들과 작업하는 것을 꺼리는 편인지?
그 때는 그런 생각이 컸다. 그런데 스태프 수만 차이 날 뿐이지 사진 현장도 똑같더라. 런던 ‘바이스 매거진’에서 일하면서 내가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다 내 편으로 만들고 싶은 맘에 스스로 스트레스를 주고 있더라. 지금은 많은 사람들과 작업하는 것이 무척 좋다.

  ‘바이스 매거진’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런던 필름스쿨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직후 ‘바이스 매거진’에서 패션 화보를 같이 찍어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플리커에서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연락이 온 거다. 유명한 매거진의 편집장과 영어로 인터뷰를 하면서, 안 떨리는 척 하느라 고생했다. (웃음)  인맥, 장비, 돈도 부족한 상황에서 모델, 스타일리스트 헌팅 등 혼자 다 해내야 하는 부분은 힘들었지만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또 즐거웠다. 거기서 6개월 정도 일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스튜디오를 차렸다. 

  지금까지 많은 아티스트, 셀러브리티들과 사진 작업을 함께 해왔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촬영이 있나?
이번 12월호 ‘엘로퀀스’ 커버로 라이언 맥긴리를 촬영했다. 당시 대림미술관에서 포토에게 준 시간이 딱 3분이었다. 나는 2분 안에 두 장소에서 찍겠다고 라이언을 끌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인터뷰 중에 그가 그러더라. 카메라가 없었으면 무례하게 느껴졌을 텐데 카메라의 힘이 대단하다고. (웃음) 그 날 한국에 와서 한 번도 선글라스를 벗은 적이 없다는 라이언의 눈을 처음으로 포착했다.

  포토그래퍼를 꿈꾸는 드리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포토그래퍼를 꿈꾸는 어린 친구들이 프로로 활동할 때가 되면 멀티플레이어가 넘쳐날 것이다. 작품에 대한 기획력은 물론 스스로를 프로모션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치에 맞지 않게 과욕을 부리다 보면 밸런스가 무너진다. 당장 웰-메이드 결과를 내놓으려고 하기보다는 차곡차곡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


 어렸을 때의 하시시박은 사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많이 찍어 보고 끊임없이 실험을 했다. 사실 많이 찍은 건지도 몰랐는데 학생들이 알려줬다. 최근 사진학과 학생들 100여명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바이스 매거진’에 있을 당시 2시간에 15롤을 찍었다고 하니까 다들 놀라더라. 그들은 방학 동안 20롤을 찍는 것도 힘들다며. 또 카메라 기종, 필름을 여러 가지로 바꿔 쓰며 다각도로 실험을 했다. 그 때 썼던 장비가 롤라이 30, 로모 칼라스플래쉬, 자동카메라 등이다. 특별히 비싸거나 좋은 장비는 없었지만 다양하게 쓰면서 효과를 연구했다.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엘로퀀스’의 사진 작업을 계속 할 테고, 최근 새롭게 시작한 것은 영화 포스터 작업이다. 영화 포스터는 그 동안 너무 해보고 싶었는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대상을 수상한 ‘디셈버’의 포스터를 작업하게 됐다. 신년에는 두 번째 개인전을 위해 해외로 나갈 계획이다. 지금까지 해온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규모가 조금 커질 것 같다. 

  끝으로 사진작가로서 하시시박의 꿈은 무엇인가?
사진으로 계속 잘 먹고 살 수 있는 것. 다른 것에 눈 돌리지 않고도 잘 살 수 있게 사진이 나를 잡아줬으면 좋겠다. 



글-| 패션웹진 스냅 권정은 사진|이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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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gie022014-08-17 오전 12:32:25

    [베스트 컷] 멋진 꿈이네요!

  • jsmksm62014-06-01 오전 7:43:03

    잘 봤어요

  • jsmksm62014-05-07 오전 10:14:03

    잘 봤어요

  • jsmksm62014-04-26 오전 8:59:24

    잘보고갑니다

  • jhj23372014-04-23 오전 12:11:38

    잘 보구 갑니다^^

  • yuza2014-04-20 오후 11:21:21

    [베스트 컷]매력있어요.

  • eg98762014-04-12 오후 6:12:48

    [베스트컷] 기억해야겠군요

  • jsmksm62014-03-19 오후 7:19:51

    잘 봤어요

  • jsmksm62014-03-13 오후 8:40:49

    잘봤습니다.


  • sia4sia42014-03-13 오전 12:11:33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