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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Vol.08 어느 호텔 생활자의 고백

조회7,755 등록일2013.11.04 2013.11.04 00: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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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나는 많이 아팠다. 하필이면 친구들은 죄 비행을 갔고 남자 친구는 두시간 거리에 있었다. (차로 두 시간이 아닌 시차가 두 시간이었다.) 몸은 아픈데 욕실에는 타월이 없고 화분은 말라가고 부엌 싱크대엔 설거지가, 그리고 그 옆 쓰레기통은 꽉 차있다. 홀로 투병 중인 것도 서러운데 생뚱맞게 집안일로 병세가 악화될 지경이었다. 남은 세제를 탈탈 털어 빨래를 돌리고 쓰레기 봉지를 묶으며 나는 혼자 나지막이 탄식했다.

“아, 차라리 입원하고 싶네.”

 
잠깐! 아픈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건 병원에 갈 때로 족하다며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병원이 아니라 호텔에 묶으면 될 일이 아닌가? (이 무슨 된장 같은 소리냐, 욕 듣기 전에 미리 말하자면 진짜 갔다는 말은 아니다. 근 한달 쉰 덕분에 이번달엔 손가락이 아니라 발가락까지 전부 빨아야 할 판이니 잠시 말 좀 하자.  ) 그 곳은 쓰레기통을 비울 필요도, 보송보송한 타월이 없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는, 전화 한 통이면 우아하게 차려진 은쟁반이 침대까지 배달 오는 그런 곳 아니던가. 아 누군들 특급호텔을 마다하리오. 진정 호텔에 살고 싶구나. 

소유한 집 한채 없이 전세계 호텔 스위트 룸을 옮겨 다니며 산다는, 집 없는 억만장자 Nicolas Burggruen의 이름이 떠올랐다. 웬만한 사람 한 달 집세 보다 많은 돈을 하룻밤 숙박비로 내고 있으니 그게 어떻게 홈리스냐, 낚였다 는 분노의 댓글이 달릴 만도 하건만, 사실 이 분 편해서가 아니라 나름 무소유의 가르침을 실행하고 계신 거란다.  아무도 머물지 않는 호화주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공간 낭비일 뿐.  해탈의 경지에 이르신 이 분과는 다르게 " 그 빈 집, 저 주셔도 되는데" 란 생각이나 하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인 내게 호텔은 편함 과 휴식의 완벽한 상징이다.  침대에 딱 붙은 채 스위치 하나로 이곳 저곳 불들을 한번에 끈다던 지 , 역시 버튼 하나로 커튼을 열어 젖힌다던지 하는 , 누가 들으면 네가 중환자냐 소리 듣기 딱 좋은 그런 오버된 편함 말이다. 

몸이 괜찮아지고 나서 상하이로 비행을 갔다.  큰 침대가 두 개, 따로 분리된 거실 까지 있는 좋은 방이 밤 비행 피곤에 찌든 나를 반긴다. 넓어서 좋기도 잠시, 뭔가 스산하다. 결국 화장실이 멀어서 무섭다며 작은 방으로 옮겼다. 그런데도 그립던 푹신한 호텔 침대에서 잠 못 들고 자꾸만 뒤척이는 건 또 뭘까. 잠시 잊고 있던 낯선 호텔방 특유의 헛헛함이었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가만 생각하니 그 억만장자 에게 붙은 홈리스 라는 그 별명 말이다, 아무리 고급 호텔이라 하여도 그 곳이  "Home "은 아니란 뜻 아닐까.  피카소의 진품이 벽에 걸렸다 한들 내 추억이 담긴 물건 하나 없는 호텔방이 정말 광고대로 Home away from home 이 될 수 있을까.  호텔은 집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집이 아니기 때문에 호텔이 있을까.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호텔이었을까 집이었을까? 

허물 벗듯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내가 친구들이랑 놀고 들어온 사이에 빨아져 있는 곳.  욕실엔 호텔 로고 대신 정체 모를 누군가의 환갑 혹은 야유회 라 적힌 타월들이 색깔 사이즈에 관계없이 가지런히 개켜져 있는 곳.  맛나게 차려주시던 식사 앞에 돈도 안내는 주제에 반찬 투정 하던 곳. 아픈 나를 보내시며 걱정 어린 엄마의 얼굴. 

집이 그리웠던 거였을까? 

TV를 켜고 눈을 감는다. 
들려오는 한국말이 자장가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Another summer day has come and gone away
In Paris or Rome but I wanna go home

Maybe surrounded by a million people
I still feel all alone
I miss you know. 

Another aeroplane, another sunny place
I'm lucky I know but I wanna go home

또 여름날이 왔다 갔죠. 파리에도 로마에도 
그러나 난 집에 가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도 혼자인 듯 느껴요. 당신이 그리워요. 
또 다른 비행기 또 다른 화창한 곳들 
내가 행운이란 걸 알아요 
하지만 난 집이 가고 싶어요.

Westlife 「HOME」


글| 패션웹진 스냅 젯셋걸(Jetset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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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nmod2014-10-31 오후 4:40:18

    저는 낯선사람이 가득한곳에 가고픕니다..

  • jsmksm62014-10-20 오전 11:56:06

    잘보고갑니다

  • jsmksm62014-10-08 오전 11:29:28

    잘보고갑니다

  • crazygirl0082014-09-16 오후 1:15:46

    잘보고갑니다

  • jsmksm62014-09-13 오전 9:33:41

    잘보고갑니다

  • jsmksm62014-08-30 오전 7:49:23

    잘보고갑니다

  • tiga392014-08-29 오후 12:32:06

    잘 보고 갑니다.

  • jsmksm62014-08-12 오전 7:53:26

    잘봤습니다

  • jsmksm62014-07-22 오전 11:04:41

    잘봤습니다

  • eg98762014-07-01 오후 7:49:39

    [베스트컷] 그렇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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